10월 10일 혼인평등소송 시작 기자회견 참석자 발언

2024-10-11

손문숙 (원고)

안녕하세요. 저는 마포구에서 8년째 지아와 함께 ‘가족’으로 살고 있는 손문숙입니다.

지아와 저는 2년 전 마포구청에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어차피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혼인신고를 했던 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마포구청도, 서울시도, 대한민국 정부도 알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이 소송에 원고로 참여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희는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고,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보통의 시민으로서 다른 여느 사람들처럼 내가 사랑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 가족으로 이미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동성이라는 이유로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않는 현 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 자체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한 사람인 저희를 얼마나 차별하는 일인지, 국가가 동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현실을 외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헌법에 보장된 시민으로서의 기본권과 행복추구권을 박탈하고 국가의 책무를 방기하는 일인지, 당사자로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습니다.

저희의 혼인신고는 비록 국가시스템에 ‘불수리’로 기록되었지만, 저희는 공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직장에서나마 혼인관계를 ‘인정’ 받을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아와 제가 활동하는 단체에서 ‘경조사 휴가’를 받게 된 경험을 통해서였는데요. 지금도 저희는 저희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대다수의 성소수자들이 저희와 같은 경험을 하지 못하니까요. 물론 직장인으로서 휴가 며칠을 더 받게 된 것도 너무나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저희에게 이 일련의 과정이 더욱 의미 있고 소중했던 이유는 ‘공식적인 내규와 절차에 의해’ 공동체 구성원의 일부로 ‘간주되는’ 그 과정 자체였습니다. 우리는 그 경험을 통해 우리 존재를, 우리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느끼며 당당하게 드러내도 된다는 감각을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실현하는 경험을 갖게 되는 것은 이런 이유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넘치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에서 이미 많은 성소수자들은 커플의 관계로, 또는 꼭 커플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가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생활공동체를 만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아와 저는 이미 가족입니다. 법적으로 결혼하는 것이 우리의 관계를 가족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결혼이 우리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더 풍성하게 하는 장치로 작동할 것이라고 믿지도 않습니다. 누구나 결혼을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평등하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성적지향과 정체성에 무관하게 누구든 원한다면 결혼을 ‘선택’하는 삶을 살 수 있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소송의 원고로서 언론사 기자님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질문의 방향과 내용에 따라 저희의 답변이 달라진다는 거였습니다. ‘좋은’ 질문은 우리를 고민하게 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저는 이번 소송 과정에서 우리가 함께, ‘좋은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 구성원이 온전히 자신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왜 중요한지, 우리 삶에 결혼의 의미는 무엇인지, 가족이란 무엇인지, 이미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구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와 ‘삶’이 평등하게 존중받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이를 위해 현재의 법과 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동료 시민들과 계속 질문하고, 고민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진심으로 고대합니다. 고맙습니다.

 

정규환 (원고)

저는 옆에 있는 김찬영과 함께 지난 10년간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 계신 분들처럼 일터에서 일상을 보낸 뒤, 집에서 따뜻한 저녁밥을 함께 차려먹고, TV를 보며 ‘오늘 별일 없었어?’라는 대화를 나누고, 반려견을 돌보는 게 삶을 살아가는 가장 큰 기쁨이자 원동력입니다. 평범한 부부의 삶을 누리고 있지만, 우리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법 앞에서는 언젠가부터 한없이 작아지는 걸 느꼈습니다. 함께 살면서도 서류상에나, 같이 살 집을 구할 때도,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거나, 유산 문제를 상의하려고 해도 우리는 가족이 아닌, 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우리가 실제로 꾸리는 삶의 모습에서 절반으로만 비칠 뿐이었습니다. 성숙해진 우리 관계만큼이나 그에 걸맞은 의무와 권리를 누리려면 결혼이라는 약속과 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누군가 제게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하냐’고 묻는다면 ‘가족’이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제가 결혼을 평등하게 인정받고 싶은 이유 역시 누구나 그렇듯 ‘가족’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지금의 가족이 가장 자연스럽고 소중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두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미래를 약속하는 것만큼 아름답고 희망적인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을 결심하고 ‘결혼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니, ‘행복을 위한 일’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결혼한 두 사람을 뜻하는 ‘부부’라는 아름다운 단어처럼, 우리는 서로를 닮았고, 두 사람이 나란히 있을 때 가장 우리답고, 안정감과 행복을 느낍니다.

혼인 신고서 한 장을 제출하기까지 수십 번 고민했습니다. 거절당할 걸 알면서도 한 글자 한 글자 설렘반 긴장반의 마음으로 빈칸을 채우고, 불수리 통지서를 받았던 날, 그 차가운 종이를 내밀면서도 “결혼 축하드려요.”라는 구청 직원분이 건넨 다정한 멘트 한 마디에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분의 진심에서 아직 법은 바뀌지 않았지만 이웃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혼인신고를 했던 작은 용기들이 모여 변화가 시작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작은 용기를 현실로 만들어줄 힘을 모아주시기를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결혼을 인정받기 전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금처럼 서로를 믿고 살아가는 일뿐입니다. 우리 두 사람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변화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고 믿습니다.

끝으로 제가 이 소송에 참여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발언할 수 있는 건 차별의 시선 때문에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지금 이 자리를 지켜보고 있을 수많은 친구들의 응원과 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보이는 것보다 수많은 동성 부부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세연 (원고)

안녕하세요. 저는 동성배우자 김규진과 함께 갓 돌이 넘은 딸 라니를 기르고 있는 김세연입니다.

새벽부터 밥을 먹자마자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고 졸라대는 라니와 함께 놀이터를 갔다오고 나니 아직 11시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지금쯤 라니는 어린이집에서 신나게 친구들과 놀다 낮잠을 자고 있을텐데요. 저도 이 기자회견을 잘 마치고 규진이와 함께 단잠을 자게 될것 같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용기를 내어 나오게 된 이유는 저희 딸 라니를 위해서입니다.

2023년 제가 일하던 병원에서 규진이 라니를 출산한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많은 동료 직원들의 축하와 응원, 그리고 담당 교수님의 이해 덕분에 저는 배우자이자 보호자로서 진통에 힘들어하는 규진의 옆자리를 지키고, 라니의 탯줄을 직접 자르고, 신생아실에 누워있는 라니를 보았습니다. 직원게시판에 저의 딸이 태어났음을 축하하는 게시글이 올라오고, 동료 및 선후배들의 따뜻한 축하 인사와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주변의 따뜻한 응원과는 다르게, 규진이가 퇴원하는 날 산후조리원에 데려다 주려 제출한 하루짜리 배우자출산휴가는 저희가 법적 부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병원 행정처에서 단칼에 거절당했습니다. 잠시 잊고 있었던 현실의 벽을 느끼는,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희 둘이 한밤중에 번갈아가며 분유를 먹이고, 날마다 쑥쑥 자라는 아이의 귀여운 옷들을 함께 고르고, 애써 만든 이유식이 싫다고 떼쓰는 아이를 같이 달래다보니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 지나 라니가 태어난지 1년이 넘었습니다. 작은 집 안에서 둘이 함께 행복하게 아이를 돌보다가도 현관을 나서는 순간 드는 걱정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작게는 누군가 아이와 저희 부부를 보고 뒤에서 수군거리며 저희 아이와 어울려 놀지 못하도록 하지는 않을지, 타인들의 날선 눈빛과 차별적인 발언들에 아이가 너무 빨리 철이 들고 또 몰래 울고 있지는 않을지. 놀이터에서 놀다 다친 아이와 응급실을 갔을 때 법적 부모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이의 치료에 대한 결정이 늦어지지는 않을지. 크게는 갑자기 덜컥 규진이 큰 사고를 당해 세상에 더 이상 없다면 제가 엄마로서 아이를 지금처럼 키우는 것이 가능할지. 현재 동성 부부를 법적인 부부로 인정하지 않는 한국에서 저와 제 배우자인 규진이 항상 갖고 사는 현실적인 걱정이자 두려움입니다.

몇 년 후 저희 아이가 조금더 자라서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에는, 이런 걱정과 두려움 없이 그저 건강하게,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처럼 뛰어놀았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세 가족이 평범한 일상을, 행복하고 안전하게 꾸려나갈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차별을 가르치는 세상이 되지 않도록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조광수 (영화감독 / 2014년 한국 최초 혼인평등소송 원고)

안녕하세요, 김조광수입니다.

저는 10년 전, 사랑하는 배우자와 함께 서울에서 공개적인 동성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 당시 많은 분들께서 저희 결혼을 축하해주셨고, 동시에 저희의 용기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한국에서 첫 번째로 혼인평등 소송에 나섰습니다. 비록 그 소송은 동성결혼의 법적 인정이라는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그 과정은 한국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졌고,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작은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새로운 혼인평등 소송이 시작됩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많은 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혼인평등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주셨습니다. 특히 이번 소송의 원고로 용기 있게 나서신 11쌍의 동성 부부들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여러분의 결단과 용기는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여주신 용기는, 사랑이 어떤 모습으로든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상기시켜줍니다.

최근 아시아에서도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받는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9년, 대만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결혼을 법제화하며 큰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이는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게도 중요한 선례가 되었으며, 대만의 사례는 한국 사회에서도 큰 희망과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대만뿐만 아니라, 태국도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법적 보호를 확대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아시아 전역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국도 더 이상 이 흐름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더욱 평등하고 포용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하며, 그 시작은 바로 혼인평등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더불어, 올해 대법원은 중요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동성 부부 중 한 명이 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결정이었습니다. 이 판결은 동성부부에게 있어서 법적, 사회적 권리를 인정받는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됩니다. 이는 비록 혼인관계가 법적으로 인정받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판결이지만, 동성 부부의 권리가 점차적으로 법적 영역에서 인정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이 판결은 혼인평등을 향한 더 큰 변화의 발판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려 국회와 정부, 법원, 그리고 시민들에게 간곡히 호소하고자 합니다. 혼인평등은 인권의 문제이며,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법적으로 인정받는 관계를 맺을 권리를 보장받는 기본권입니다. 혼인평등은 단순히 성소수자들의 권리 보장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제는 국회가 화답해야 할 때입니다. 정부가 우리의 삶을, 우리의 사랑을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법원이 법의 이름으로 평등을 보장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료 시민 여러분, 사랑은 결코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지지와 응원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소송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혼인평등을 향한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비록 그 길이 험난할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이뤄낼 것입니다. 사랑이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조광수 드림

 

한은정 (원고 황윤하 어머니)

저는 혼인평등 소송을 낸 원고 황윤하의 엄마입니다.

우리 딸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을 뿐이고요, 저는 그저 우리 딸의 행복을 바랐을 뿐인데요, 이 아름답고 소중한 사랑 이야기가 ‘소송’이라는 어렵고 무거운 과정이 된 것이, 몹시도 유감스럽습니다.

저도 이성 간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만 익숙하게 들어왔던 세대인지라 동성연애를 하는 딸의 이야기가 처음에는 저를 놀라게 했고, 낯설게 느껴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낯섦이 딸의 사랑을 반대할 이유가 될 수 없었고, 제 딸은 가족과 친구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을 했습니다. 이 과정은 매우 자연스러웠고 행복했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제 딸은 결혼 이후에 더 안정을 찾은 듯 보입니다. 저는 딸의 배우자를 ‘새딸’이라고 부르는데요,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 된 새딸과 함께하는 모든 일이 무척 즐겁습니다. 딸 부부와 함께 밤샘 수다를 나누기도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여행을 가기도 하고, 명절엔 함께 차례를 지내기도 합니다. 딸의 배우자가 여자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 부모님은 팔순을 넘기신 분들인데요, 저에게 묻더군요. 아직도 동성결혼이 안 되는 것이냐고요. 42년생 43년생인 제 부모님도 동성결혼이 허용되는 사회라고 예상을 하고 계셨는데, 팔순을 넘기신 어르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 우리 세상은 더 느리게 흐르고 있었나 봅니다.

자녀가 동성결혼을 했기 때문에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하셨던 분들이 계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성결혼을 한 우리 딸 부부의 이야기가 너무 밝아서 오히려 이상하셨을까요? 아마도 동성결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시는 부모 세대 분들 중에는 제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왜 그렇게 동성결혼을 떠들고 다니고, 굳이 결혼식은 왜 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이런 자리까지 나왔냐’고요.

저는 우리 딸이 매우 사랑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자녀가 멋진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는 일이 제게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자녀의 결혼식을 굳이 시키지 않을 이유도 제겐 없었습니다. 단 한 가지, 동성결혼이라는 이유로 법적인 부부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분노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부부로 인연을 맺고 가정을 이루어 사는 것, 여기에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딸 부부를 부부로 인정해 주십시오.

 

신영순 (원고 박지아 어머니)

창문을 열면서 하늘을 보니 정말 푸르고 맑구나.

지아에게 사진 한장 찍어서 보내며 오늘도 화이팅이라고 말해본다.

이 펜을 들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지 잘 정리가 안된다.

어느날 너가 나에게 책을 한 권 주었지. 너와 같은 사람들의 스토리와 부모님의 이야기가 담긴 책. 난 읽지 않고 책을 거꾸로 꼽아 놓았다. 누군가 제목을 볼 까봐, 그들의 이야기도 생각도 알고 싶지 않고, 내 눈을 두손으로 가리면 난 하늘도 아무것도 안 볼거라 생각했으니까.

너가 집을 나가 둘이서 동거를 시작하고 어느날인가. 느낌이 오더라. 그렇지만 외면하고 알고 싶지 않았고, 말하지 말기를 바라면서 지내는 시간 동안 우연히 너가 자꾸 세상에 드러낸다는 걸 알고 왜 그러니 하고 물었을 때 너희 둘이 깜짝 놀라던 그 모습도 떠오르네.

세상과 맞서 싸울 용기를 가진 너희에게 이제 작은 힘을 보태고 싶구나.

모든 하루가 소중한 날이다.

오늘 내 딸 지아가 웃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딸 지아를 숙이 너에게 맡긴다. 나에게 돌려주지 말고 항상 사랑하고 행복하렴.

이제는 얼굴을 가린 두 손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아야겠다.

 

조숙현 (대리인단 단장/변호사)

저는 2001년 변호사가 되었는데, 당시 너무나 운이 좋게도 새내기 변호사로 2001년 시작된 호주제 폐지 소송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2014년 김조광수 부부의 동성혼 소송에 이어 이번 소송에 참여하게 된 것도 과거 호주제 폐지 소송 참여 경험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2001년 3월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재판장 안성회)에서 첫번째 위헌제청결정이 나고 이후 헌법재판이 시작되어 2005년 2월 3일 헌법불합치결정이 난 그 과정을 돌이켜 보면서, 이번 소송 역시 동성동본 금혼제 폐지나 호주제 폐지, 부성승계강제 원칙 폐지 등 가족법에서의 차별적인 법률 규정이 사법절차를 통해 폐지되고 개선되어 온 과정의 하나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 자료를 찾다 보니 제가 쓴 글 중에 “호주제폐지위헌소송을 준비하면서 당시 부성주의 원칙 자체에서 오는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부성주의에 대한 법률적 문제제기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판단을 했었지만 불과 몇 년의 시간이 흘러 호주제의 폐지는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었고 부성주의에 대한 위헌판단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의 인식은 정말 빠르게 변화하고, 지금은 당연하고 어쩔 수 없다고 평가되어지는 부당한 제도들 역시 불과 몇 년 후에는 다른 평가를 받게 되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로스쿨에서 가족법 실무 강의를 할 때 학생들을 만나보면, 학생들은 호주제라는 것은 교과서로만 봐서, 호주제가 있을 당시에 여자가 결혼을 하면 본가 호적에서 제적되어 남편이 호주로 있는 호적의 가족원이 되었고, 이혼을 한 후 엄마가 자녀들의 친권자가 되어도 아이들은 아빠의 호적에 있고 엄마의 호적에는 아이들이 올라오지 못한다고 설명해주면 그런 말도 안되는 시대가 있었냐고 합니다. 아주 아주 오래 전 일인 것 같지만, 불과 20년 전의 모습입니다.

동성동본금혼, 호주제, 부성승계강제주의 등 그 당시에는 아직 폐지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여겨졌던 불평등한 가족법 내의 제도들이, 사법부의 판단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위헌으로 선언되고 개정되어 왔습니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제도가 붕괴될 거라고 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가족내의 평등이 실현되었을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동성혼인 법제화는 오히려 너무나 늦은 감이 있습니다. 이 소송은 성소수자의 혼인권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지만, 과거 동성동본금혼제, 호주제, 부성승계강제주의 등과 같이 우리 가족법에 남아 있는 차별적인 제도를 개선하고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동성 간의 혼인을 허용하지 않을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고 위헌이 아니라고 이유를 쓰기가 오히려 어려운 소송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인정되어야 만하는 소송인 만큼, 그 시기가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동성 간의 혼인 법제화는 정의의 실현이나 옳은 일이기에 이루어야 하는 당위적이고 추상적인 명제만은 아닙니다. 법적인 혼인관계로 인정받지 못해서, 자신이 잘못되었을 때 배우자가 자녀의 법적인 보호자가 될 수 없어 아이가 보호자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인 공포입니다. 내가 사고를 당했을 때 내 배우자에게 권한이 없어 나에 대한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은 실제 하는 피해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나중에” 라고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로 인정받지 못해 현실적인 피해를 겪고 있는 동성부부들이 하루라도 빨리 구제받을 수 있도록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동성간 혼인을 허용하지 않는 민법 규정에 대해 위헌을 선언하기를 바랍니다.